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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여자 오랜만에 홍상수 영화 하나를 봤다. 제목은 도망친 여자. 별 생각없이 보는데 웃긴 씬이 나왔다. 길고양이들때문에 못살겠다는 이웃주민 남자와 길고양이들에게 계속 밥을 주는 여자의 대화였다. 둘은 매우 정중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할 말을 다 하는데 그 대화가 너무 웃겼다. 남자는 길고양이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이웃이 더 중요한거 아니냐고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죄송하다고 공감하면서도 고양이들이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하다고 하면서 계속 제자리를 맴도는 대화를 한다. 나는 두 사람의 입장이 다 공감이 됐는데 여자의 말이 좀 재밌었다. “이웃도 중요하죠~ 그런데 저희한테 저 고양이들은 애기들이에요.” 애기들이면 집에 들여서 집안에서 키우지 왜 바깥에 나돌아다니게 두지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이웃남자도 행복하고 여자 ..
의리로 결혼한다는 친구 사랑의 유효기간은 얼마일까? 곧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 물었다. 사랑하는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기간은 지났고 의리로 결혼한다고. 나는 솔직히 모르겠다. 가슴뛰고 설레는 사랑의 감정 없이 결혼을 한다는 건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머나먼 훗날 혼자 외로이 늙어갈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뿐이다. 내가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걸까? 친구 말마따나 그냥 살 부대끼며 사는거 별거 없다치고 살면 그게 다인걸까? 때가 되니 생전 해보지 않은 고민을 매번 하게 된다.
그 하얀뱀은 무엇이었을까? 초등학생이었는지 중학생이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충 그쯤. (아마도 중1 전후라고 확신한다) 나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 집안에 있던 하얀뱀을 잡으려고 쫓아갔다. 그때 나는 자고 있던것도 아니고 완전 깬 상태도 아니었다.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겪었던 그 느낌을 설명할 길은 이것뿐인것 같다. 대체 그 하얀뱀은 무엇이었을까? 여전히 나는 모르겠다. 당시 내 무릎높이 정도에서 물뱀처럼 달아나던 그 하얀뱀은 아마 내가 죽을때까지 기억날 것 같다. 그 하얀뱀은 애초에 우리집에 있었던 건지 아니면 밖에서 들어와있던 건지 모르겠다. 앞서 말한 수면상태도 아니고 잠에서 깬 상태도 아닌 그 순간 내 눈에만 보였던 하얀뱀을 나는 내가 누워 자던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쫓았다. 그때 나는 그 하얀뱀을 무척 잡고싶었다. ..
함박눈 내린 날 아침부터 함박눈이 내렸다. 오전 내내 눈이 내려서 창밖의 세상이 전부 하얗게 뒤덮였다. 나는 눈이 좋다. 특히 오늘 같이 천천히 떨어지는 뽀송뽀송한 느낌의 눈이. 오죽하면 눈이 쌓이면 바로바로 제설 작전을 실시해야하는 군대에서도 눈이 싫지 않았다. 왜지? 나는 왜 눈이 좋을까? 수북이 쌓인 눈이 복잡한 세상을 하얗게 뒤덮어버려서? 옷이 젖어버리는 비와 달리 눈은 그나마 털어낼 수 있어서? 어릴 때 살았던 부산에서는 눈이 별로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겨울을 좋아해서? (그러고보니 겨울을 좋아해서 눈이 좋은건지 눈이 좋아서 겨울이 좋은건지도 잘 모르겠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가 꽤나 많을 것 같긴하다. 어쨌든 나는 눈이 좋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한 번은 제대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읽게 됐다. 첫 번째 수기부터 나름 공감가는 부분도 있고 술술 읽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주인공인 요조의 생각은 도대체 어디까지 파고드는 걸까 싶을 정도로 그의 생각과 행동이 난해했다. 나는 가끔 거대한 행성이 지구에 충돌해서 눈깜짝할 순간에 세상이 멸망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하지만 요조처럼 자신을 파괴하는 행동의 기저에는 무엇이 작동하고 있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존재의 고통을 이해하기란 정말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내용은 흡입력이 있었다. 결국 요조는 어떻게 될까? 파멸을 맞을까? 회생할까? 그런 마음으로 쭉 읽었다. 결론은.. 뭐.. 그렇다. 사실 요조가 가지고 있는..
운동 후 근육통으로 뻗은 날 몇 개월만에 하는 풋살경기 후에 근육통이 동반한 두통 소화불량으로 완전 쓰러진 날이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계속 쓰러져있었다. 저번 달에 등산갔다와서도 그랬는데 이번에 풋살하고와서도 이래서 정말 체력 저질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휴 다행히 오늘 저녁쯤 되서 두통이 많이 가라앉아서 이렇게 끄적이고 있다. 이제 슬슬 자려고 불을 껐는데 바로 누우면 저녁으로 먹은 전복죽이 잘 소화가 안될까봐 책을 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나는 진짜 체력이 실격이다 후…
직소퍼즐 맞추기라는 훌륭한 취미 나의 취미 중 하나는 직소퍼즐 맞추기다. 주로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한 장면으로 만들어진 직소퍼즐을 맞추는 걸 좋아한다. 주로 500피스, 때때로 1000피스짜리 퍼즐을 맞추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퍼즐 맞추는 것을 질색한다. 완성되지 않은 각양각색의 퍼즐 조각들을 보면 "와 이걸 언제 다 맞춰?", "보기만해도 눈이 빙빙 돈다." 라는 생각들을 하는 것 같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취미는 직소퍼즐에 관심이 있어서 시작한 것은 아니고 단지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특별한 장면을 음미(?)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그런데 퍼즐조각 하나하나 맞춰가고 그림들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고 어울리는 액자로 완성해놓으니 많이 예쁘고 뿌듯했다. 500피스, 1..
2023년 설날. 명절에는 집콕 방콕 어렸을때부터 우리 가족은 특별히 명절이니 크리스마스니하며 유난스럽지 않았다. 명절이면 그냥 맛있는거 하나 해먹거나 그정도고, 크리스마스같은건 그냥 빨간날일 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명절은 그저 연휴일 뿐이다. 연휴인데 영업하는 가게가 별로 없어 오히려 불편한 연휴라고 하면 딱 맞는 설명인 것 같다. 사실 명절이면 보고 싶은 삼촌, 이모, 사촌누나들 동생들이 있다. 그런데 다들 부산에 있어서 마음먹고 보러가는게 쉽지가 않다. 나랑 엄마 둘만 해도 기차 가격이 거의 30만원이다. 게다가 예매 전쟁까지 치러야하니 아예 갈 엄두도 내지 않는다. 요새 명절은 그냥 여기저기 다니지 않고 푹 쉬는 날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추세인 것 같다. 왔다갔다하는 비용과 노고가 만만치 않은 걸 다들 공감하고 있는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