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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내가 살아 있구나 느낀 순간

2016년, 나는 유럽배낭여행을 떠났었다. 목적은 유럽 축구 경기를 잔뜩보고 그 외엔 이곳저곳 정처없이 다니며 구경할 생각이었다.

 

영국 런던부터 시작해서 스페인 바르셀로나,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르트문트, 스위스를 거쳐 프랑스 파리까지 여행했었다. 좋아하는 축구팀의 선수들과 감독을 만났고 사진도 찍고 유니폼에 사인도 잔뜩 받았다. 런던에 도착해 사흘만에 가장 중요했던 일정을 마무리하고보니 나머지 여행일정이 여유롭게 느껴졌다. 뭐 딱히 여행일정이라는 게 없었다 사실. 대충 다음은 어느 도시에 가볼까, 거기 가면 이런 축구팀의 이런 구장이 있고 어떤 건축물이 있으니 그것들 봐야지 라는 태도로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계획으로 다녔다.

 

유럽여행을 가기로 마음 먹었을 때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 없이 갔다. 대략 한달간의 여행이면 충분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편도로 영국 런던에 입국했기 때문에 입국심사가 쉽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일단 영국을 떠나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미리 출력해놓고 "걱정마 니네 나라에서는 이때 떠날테니" 라는 안전장치를 마련해뒀다. 기억에 남는 것은 입국심사관이 맨체스터에 가는 목적을 물어봤을 때였다. 나는 축구경기를 보러 간다고 대답했고, 입국심사관은 나에게 물었다.

- 아스날?

- 예스~ 아스날~

심사관이 아스날 서포터라고 확신했다. 그와 나는 바로 통했다. 그 순간 우리는 전우가 됐고 근엄한 표정을 고수하던 심사관은 방긋미소와 함께 나와 작별인사를 고했다.

 

영어를 잘 못하지만 한 달동안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참 재밌게 다녔던 것 같다. 프랑스 파리에서 이제 그만 슬슬 한국으로 돌아가볼까 생각이 들었고 바로 이틀 뒤 비행기를 예매했다. 세상 참 좋아졌다고 느낀게 스마트폰 하나면 못다닐 데가 없겠다 싶었다. 특히 구글맵은 정말 신앙처럼 받들게 됐다. 구글맵 최고. 외국 한정..

 

아무튼 드골 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그 시각 벨기에 브뤼셀 공항에서 폭탄 테러가 있었다. 폭탄이 터졌었나? 잘 기억은 안나는데 아무튼 그래서 내가 있던 프랑스의 드골 공항에서도 긴급하게 점검을 실시하느라 좀 지연이 됐었다. 그래도 아예 비행편이 취소 되지는 않았고 곧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지그재그 줄줄이 사람들이 서있는 줄의 옆에 큰 벽면에 세계지도가 커다랗게 꾸며져 있었다. 그 순간 한달 간의 여행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나는 이때 내가 살아 있음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내가 진짜 이 세계에 속해있고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때는 그저 앞으로도 이 세계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쳤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만큼 두근거림이 강했던 경험은 없었다.

 

겨울이 깊어가니 마침 그때가 생각난다.